장르: 드라마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세실라 로스, 마리사 파레데스, 캔델라 페나, 안토니아 산 후안, 페넬로페 크루즈
마드리드를 떠나 바르셀로나로
마드리드의 장기이식센터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마누엘라는 작가가 꿈인 아들 에스테반과 단 둘이서 살고 있다. 17세 생일을 맞이한 에스테반은 마누엘라와 함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관람한다. 마누엘라는 20년 전 마을 극단에서 스텔라 역할로 에스테반의 아버지와 연극을 한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결혼하지만, 돈을 벌러 프랑스로 갔던 남편이 2년 만에 '롤라'라는 이름을 한 여장남자로 돌아오자 마누엘라는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바르셀로나를 떠난다. 그녀는 에스테반에게 집으로 돌아가면 이제껏 말하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 것을 약속한다.
공연이 끝난 후 에스테반은 '스텔라' 역의 니나와 '두브와' 역의 위마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빗속을 뛰어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마누엘라는 슬픔 속에서 에스테반의 심장 이식에 동의한다. 유품을 정리하던 중 아들의 노트에서 아버지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발견하는 마누엘라는 그를 찾기 위해 17년 전 에스테반의 아버지로부터 도망쳐 나왔던 그곳, 바르셀로나로 돌아간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귀향'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그의 영화를 접했을 때 나는 그 강렬한 색채에 매혹당했다. 절대 괜찮을 수 없을 것 같은 무거운 이야기 속에서 그의 색은 너무 생동했고, 반짝거렸고, 아름다웠다. 죽음과 온갖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도 펄떡거리며 요동치는 삶에 대한 이미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이름은 이와 같은 아이러니 속에서 깊이 각인됐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은 시기적으로 '귀향'보다 앞서 나온 영화이지만 알모도바르의 주된 특징과 스타일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사실 알모도바르의 초기작은 성에 대한 뒤틀린 묘사 등 좀 더 도발적이고 키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1999년에 나온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은 알모도바르의 작품 세계에 또 다른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알모도바르는 이 영화에서 성에 대한 일반적이지 않은 설정이나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탐구 등을 여전히 주요한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이 자극적인 소재들을 더 깊고 원숙해진 시선으로 풀어낸다.
또한 영화는 두 작품 <이브의 모든 것>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끊임없이 인용, 반복하고 있는데 이 두 작품 속의 여자 주인공들이 욕망과 허황된 꿈에 사로잡힌 인물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 이 두 작품의 메시지를 반전시키면서 강조하려고 했던 희망과 연대라는 주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여성들의 연대, 위대한 모성
'귀향'과 마찬가지로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은 여성들의 이야기다. 특히 어머니, 모성애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2022년이라는 시대를 고려하면 모든 것을 포용하고 용서하는 모성애라는 키워드는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처진 것처럼 보인다. 강요된 모성애와 여성성을 벗어나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은 이미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며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성애라는 의미를 조금만 더 확장하면 모성애에 대한 숱한 오해들을 풀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모성애는 인류애적 모성애다. 마누엘라는 여장남자, 에이즈에 걸린 수녀, 마약중독자, 레즈비언 등 사회에서 유리된 여성들과 연대할 뿐만 아니라 사회를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로 표현되는 남성에 대한 관용을 보여준다. 마누엘라의 모성애는 강요된 모성애가 아닌 주체적이고 적극적 의미의 모성애다. 이 영화에서 여성은 강력한 남성에 의해 인내하고 희생 당하는 약자로서의 여성이 아니다. 오히려 여성은 고통을 마주하는 용기와 힘, 화합하고 연대하는 공감능력을 가진 치유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강인함이 전제되기 때문에 그들의 용서와 헌신은 무력한 남성성과 대비해 더욱 숭고하게 느껴진다. 마누엘라는 여성의 연대와 표용력을 대표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인류애의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영화는 평범하지 않은 사랑의 결실을 어떻게 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통해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온몸으로 고통을 느끼면서도 상처받은 이들을 끌어안고 다독이면서 새로운 희망과 삶의 의지를 심는 마누엘라의 사랑은 모든 경계를 초월한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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