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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늑대아이(2012): 모성애로 쓴 아름다운 성장 일기

by N이와이 2022.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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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애니메이션

감독: 호소다 마모루

출연: 미야자키 아오이, 오오사와 타카오, 쿠로키 하루, 니시이 유키토

 

하나와 두 아이, 유키와 아메

평범한 대학생 하나는 늑대인간 '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함께 살며 인간과 늑대의 혼혈인 두 아이, '유키'와 '아메'를 낳는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그'는 늑대의 모습으로 산에 사냥을 갔다가 익사사고로 죽고 만다. 혼자 남은 하나는 특별한 두 아이를 위해 시골로 이사한다. 

 

'하나'라는 이름은 하나가 태어났을 때 마당에 심지도 않은 코스모스가 핀 것을 보고 언제나 웃으라는 의미로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코스모스는 겉으로 보기엔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약한 꽃이지만 심지도 않은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결실을 맺는 생명력이 강한 꽃이기도 하다. 하나는 코스모스를 닮았다. '늑대인간'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장벽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하나는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당황하고 무서워하기보단 도서관에서 혼자 분만하는 방법을 찾았다. 스스로의 미래를 선택하고,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단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고 살아간다. 늑대아이인 '유키'와 '아메'라는 존재는 하나의 이런 성격이 맺은 아름다운 결실이다. 하나의 유연하지만 단단한 모습은 두 아이에게 자유롭지만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그들의 조금 위험한 세상이 다른 세상과도 섞일 수 있게 울타리에 작은 문을 달아준다.  

 

눈이 내리는 날 태어난 '유키'는 아메보다 한 살이 많은 여자아이로 이 이야기의 화자다. 어린 유키는 엉뚱하고 혈기왕성한 아기늑대 그 자체다. 사람들 앞에 늑대의 모습으로 나타나 하나를 당황시키기도 하고 야생에서 뱀이나 도마뱀 같은 것들을 사냥하거나 가구를 물어뜯는 등 늑대의 성향을 많이 드러낸다. 가끔 늑대와 인간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할 때도 있지만 활달하고 외향적이며 사랑스럽다. 

비가 내리는 날 태어난 '아메'는 유키와 달리 얌전하고 내향적인 남자아이다. 처음 시골에 적응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집으로 가자고 할 만큼 소심한 면을 가지고 있다. 몸이 약해서 엄마의 등에 자주 업혀 있으며 자신이 늑대라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겨울 뿔호반새를 사냥하려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이 있은 후 늑대라는 정체성에 조금씩 눈을 뜬다. 

 

 

하나의 모성애와 두 아이의 성장기

엄마인 하나는 완벽한 원더우먼이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갖은 고생을 하지만 아버지의 소원대로 언제나 성실하고 긍정적이다. 영화를 보면서 하나의 어떤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놀라웠던 건 아니다. 사실 육아라는 건 아이들이 늑대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현실에서도 어차피 전쟁이니까. 하나의 힘든 육아보다도 더 인상적이었던 건 하나가 아이들을 키우는 방식과 마인드였다. 하나는 유키와 아메가 가진 늑대의 본성을 죽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들을 이끌고 몰아가기보단 아이들에게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그 안에서 그들이 마음껏 상상하고 정체성을 찾도록 도와준다. 

시골은 인간과 자연의 중간 지점이다. 위로는 늑대가 사는 자연이, 아래로는 인간이 사는 마을이 존재하는 곳. 너는 늑대야, 혹은 너는 인간이야,라고 아이들의 정체성을 정의하지 않는 엄마. 이 영화는 하나의 열린 교육방식과 그 안에서 자연과 인간 세계를 두루 경험하며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두 아이의 성장이 가슴 뭉클하게 전개된다.

 

초등학교는 개인으로 머물던 인간이 처음으로 사회적 인간으로서 돋움하는 곳이다. (요즘의 경우 유치원이지만 어쨌든 영화에서는 초등학교다.) 유키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자신이 살던 세상과 다른 아이들의 세상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하지만 활발하고 사교적이었던 유키는 다름을 인지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빠르게 적응한다. 반면 아메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아메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두 아이의 성장하는 시간을 보여줌과 동시에 두 아이가 인간 사회인 초등학교에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아주 멋진 롱테이크 장면이 있다. 

1학년 교실에서 외따로 앉아있는 아메를 보여준 카메라는 바로 옆 2학년 교실로 이동하여 친구들과 어울리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유키를 보여준다. 다시 아메의 교실로 카메라가 이동하면 2학년이 된 아메가 동급생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3학년인 유키가 아이들을 쫓아낸다. 다시 4학년 교실로 옮겨간 카메라가 발표중인 유키를 비추고 3학년 교실로 돌아오면 아메의 자리는 비어있다. 유키와 아메가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3년의 긴 과정을 과감하고 압축적으로 보여준 연출이다. 

 

13년의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은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미래를 선택한다. 엄마 품에 안겨서 쫑긋한 귀를 숨기지 못했던 두 아이는 어느새 자라 엄마의 울타리 밖으로 성큼 한 발짝 내디뎠다. 

이제는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세 사람을 아주 오래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천방지축 아기늑대 유키와 엄마 뒤로 쏙 하고 숨던 아메, 그리고 하나와 '그'의 행복했던 어느 순간이 마치 나의 기억인 것처럼 반짝거린다. 그들의 앞날을 기대하는 마음과 동시에 다 자라 버린 아이를 떠나보낼 때의 여운으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는 하나의 마음은 곧 현실을 은유하는 영화의 마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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