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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드라이브 마이 카(2021): '상처와 치유'를 싣고 달리는 자동차

by N이와이 2022.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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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드라마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니시지마 히데토시, 미우라 토코, 오카다 마사키, 키리시마 레이카, 박유림, 진대연

 

2013년에 발표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영화화했다. 하루키의 소설 속 화자인 가후쿠는 배우이자 연출가로 <바냐 아저씨>의 '바냐' 역을 연기하고 있다. 다만 류스케 감독은 소설에서 언급된 정도였던 <바냐 아저씨>를 영화의 전면으로 끌고 와 주제를 심화시킨다. 고통받는 주인공인 가후쿠와 바냐가 서로 호응하면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힘 있게 전진한다.

 

영화는 바냐 아저씨의 연극 장면과 대사가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극이 시간 순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영화의 이해를 위해서 <바냐 아저씨>의 간단한 줄거리를 알고 영화를 보는 것이 좋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사실주의 연극의 대가 체호프의 대표적인 희곡 중 하나로 1897년에 출간되었다.  <바냐 아저씨>는 '바냐'라는 인물을 통해 개인의 고립과 소통의 단절 속에서 반복되는 절망과 후회를 보여주며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바냐는 누이동생의 딸 소냐와 함께 시골의 영지를 지키며 살고 있다. 그런데 죽은 누이동생의 남편이었던 세레브랴코프 교수가 대학을 퇴직하고 젊고 아름다운 엘레나와 함께 이곳으로 돌아온다. 바냐는 한때 학자로서 존경했던 세레브랴코프가 속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에 빠진다. 게다가 엘레나에 대한 사모의 감정이 싹트면서 바냐의 고뇌는 한층 심각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세레브랴코프는 자신의 땅과 저택을 팔고 도시로 나가겠다고 이야기한다. 반평생을 조카와 일군 이 땅에서 쫓겨나게 된 바냐는 분노하여 세레브랴코프를 권총으로 쏜다. 총알이 빗나가는 큰 소동이 벌어지고 결국 세레브랴코프 부부는 도시로 돌아간다. 남겨진 바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음을 터트리지만 그런 바냐 아저씨를 소냐가 위로한다. 우리의 삶이 때론 힘들고 때론 고달파도 어쨌든 계속 묵묵히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프롤로그

영화 초반부는 소설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문학적이다. 특히 가후쿠와 아내 오토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를 강렬하게 뿜어낸다. 하루키의 소설이 원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봐도 느껴질 정도의 색이다. 나는 초반의 이런 분위기가 조금 두근거렸다.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내달리는 차와 문어체로 흘러나오는 체호프의 대사들.. 그리고 하루키의 감성. 

가후쿠는 우연히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후 이유를 묻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바냐를 연기하던 가후쿠는 바냐와 자신의 상처를 동일화하게 되고 결국 바냐를 연기하는 것을 포기한다.

한편 가후쿠는 차에서 오토가 녹음해준 대사를 들으며 대본을 연습하는 습관이 있었다. 오토는 죽은 이후에도 가후쿠의 차 안에서 끊임없이 재생된다.

2년 후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청되어 작품의 연출을 하게 된 가후쿠는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를 만나게 된다. 가후쿠와 오토만이 존재하던 공간에 미사키가 끼어들어 오고 처음에 거부감을 느끼던 가후쿠는 점점 미사키와 상처를 공유하게 된다.

 

 

가후쿠의 차가 도착한 곳

사실 중후반부의 플롯은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상처를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가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위로하면서 스스로의 아픔을 딛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영화가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건 이 상투적인 플롯을 교집합 시키고 직조하는 방식이다. 

 

이유나는 가후쿠가 연출하는 <바냐 아저씨>에서 '소냐' 역을 맡은 한국인 배우다. 유나는 원래 무용가였지만 임신했던 아이를 잃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절망에 빠진다. 체호프는 개인의 고립과 소통의 단절을 주로 다루었던 작가였다. 오토의 고백을 회피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던 가후쿠는 바냐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한다. 그러나 체호프는 결국 일상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작가이기도 하다. 유나는 체호프의 글을 읽고 체호프의 글이 내 안으로 들어와 몸을 움직였다고 이야기한다. 상처에 함몰되어있던 가후쿠와 미사키에게 보내는 유나의 메시지는 바냐를 위로하는 소냐와 아주 닮았다.

 

또한 소설에서도 강조되는 다카츠키의 말은 가후쿠가 이해의 방향을 오토가 아닌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오토와의 일상이 깨질까 봐 두려웠던 가후쿠는 오토와의 관계에서 핵심을 파고들지 못하고 회피한다. 결국 오토를 떠나보낸 후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그 원인은 오토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토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그래서 피하고 모른 척했던 가후쿠에게 있다. 이것을 깨달은 후에 가후쿠는 오토를 이해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영화는 이처럼 두 개의 문학작품을 절묘하게 교집합 시키며 주제를 향해 나아간다. 

 

단절의 상징처럼 보였던 자동차의 문이 열리고 미사키가 차에 오른다. 자동차는 단절되고 또 소통하는 공간이다. 가후쿠의 자동차는 오토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장소다. 자동차는 어느 곳이든 갈 수 있지만 가후쿠는 오토의 목소리로 가득한 이 자동차 안에 갇혀있다. 미사키에게 자동차는 어린 시절 학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엄마의 명령에 따라 운전했던 자리, 강박적으로 부드러운 운전 실력과 침묵을 강요받았던 곳.

그러나 자동차는 동시에 많은 소통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뒷자리에서 미사키의 옆자리로 이동한 가후쿠는 미사키와 동등한 위치에서 개인적이고 아팠던 이야기들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자동차는 기꺼이 미사키가 받았던 상처의 본원지 홋카이도를 향해 달린다. 

 

영화는 마침내 바냐를 연기하는 가후쿠와 누군가의 운전기사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드라이브하는 미사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상처를 보듬지만 소냐의 말처럼 어떤 대단한 미래를 기대해서가 아니다. 삶은 길고 긴 낮과 오랜 밤들을 살아 나가는 과정이다. 주어진 일을 하고 시련을 참아내고 훗날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괴로웠는지를 돌아보는 게 인생이다.

타인이 아닌 자신을 이해하고 묵묵히 한 발자국 나아가는 삶. 드라이브 마이 카는 잔잔하지만 오래된 한숨을 토해내게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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