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SF, 드라마, 가족
감독: 코고나다
출연: 콜린 파렐, 조디 터너 스미스, 저스틴 H. 민, 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
안드로이드 인간 '양'
고도로 발달한 테크로 사피엔스와 복제인간이 일상화된 미래. 제이크와 카이라 부부는 딸 미카를 입양하고 미카에게 자신의 뿌리인 중국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쳐 줄 문화 테크노 로봇 '양'을 구매한다. 미카는 양을 친오빠처럼 따른다. 어느 날 가족처럼 지내던 양이 갑자기 작동을 멈추자 제이크 가족들은 상실감에 빠진다. 제이크는 그를 고치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서고 그러던 중 양에게서 특별한 기억장치를 발견한다. 제이크와 카이라는 편린 된 양의 기억을 탐험하면서 자신들이 몰랐던 양의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
존재의 시작과 끝
애프터 양은 모든 것들이 혼재되어있는 사회다. 백인, 흑인, 아시아인과 같은 인종뿐만 아니라 복제인간, 휴먼로봇이 이질감 없이 어우러져 산다. 사실 영화 속 사회는 굉장히 조화롭고 평화롭다. 그래서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런 갈등 없이 저런 사회가 가능할까? 저렇게 다양성이 정착된 사회에서 제이크와 카이라가 중국계 혈통의 미카의 정체성을 찾아주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뭘까?
미카의 정체성을 찾아주려는 노력은 사실 양은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과도 연결된다.
제이크는 차를 만드는 사람이다. 제이크가 처음 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차의 향과 맛 때문이 아니었다. 대학 때 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제이크는 차의 목적과 차를 찾는 과정, 곧 차의 복잡한 물질을 추적하고 그것을 흙, 식물, 날씨 그리고 삶의 방식과 연결하는 과정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그러면 차의 향과 맛은 어떨까. 차는 맛과 향기를 명확하게 묘사할 수는 없지만 상상하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있다. 모든 것이 담긴... 차에 대한 이 묘사가 너무 좋았던 제이크는 그 영화를 수도 없이 돌려 봤다고 말한다. 제이크의 차에 관한 이야기는 흡사 삶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차의 기원을 찾고, 한잔의 차에 세상을 담는 제이크는 그래서 필연적으로 양의 기억을 더듬고 양의 존재에 대해 질문할 수밖에 없다.
제이크는 양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양은 물론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양은 자신에게도 그저 차에 관한 '지식'이 아닌 차의 공간, 차의 시간에 관한 진짜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에겐 프로그램화된 지식을 넘어선 사유의 흔적이 있다.
카이라는 양의 수집품이었던 박제된 나비 액자를 보면서 양과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중국인들은 나비를 오래전부터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노자는 나비를 두고 애벌레에게는 끝이지만 나비에게는 시작이라고 말했다. 카이라는 끝이 곧 시작이라는 이야기를 믿냐고 묻지만 양은 끝에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괜찮다고 대답한다. 카이라는 왜 양에게 슬프냐고 물었을까? 이방인이라는 양의 정체성 때문에? 아님 유한함이 전제된 존재라서? 하지만 두 가지는 양은 물론 카이라에게도 해당된다. 다문화 가족의 구성원인 그들은 이 물음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차의 이야기가 존재의 기원을 찾는 이야기라면 나비는 존재의 끝을 파고드는 이야기다. 양은 중국인으로 프로그램된 로봇이다. 양은 중국에 대한 지식들로 가득하지만 미카와 달리 중국인이 뿌리라고 볼 수는 없다. 그의 기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양이 인간이 되고 싶어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양이 차의 지식이 아닌 차의 신비를 느끼고 싶어 했고 또한 나비를 좋아하고 수집했던 것을 보면 누군가로부터 정의된 무엇이 아닌 스스로의 목적과 존재의 이유를 찾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한다는 것
기억이라는 건 존재하는 것들을 가장 가치 있게 만든다. 기억이 없어도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억함으로써 존재는 비로소 아름다워진다. 양의 편린 된 기억은 양이라는 존재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는 로봇이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기억하고 기록함으로써 생명력을 얻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제이크와 가족들은 모인다. 카메라는 네 사람을 향해 있고 양이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 뒤에 있을 때 양의 눈은 곧 카메라의 시선과 일치한다.
양은 1회에 3초의 기억만 기록할 수 있다. 양의 기억 속은 짧은 기억의 편린들이 우주 속의 별처럼 흩어져 있다. 아름다운 별 속을 탐험하면서 기억의 조각들을 편집하고 재구성하던 제이크는 리퍼 제품이었던 양에게 오래된 다른 가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이크는 양의 기억을 따라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삶의 풍경들을 본다. 양을 형이라고 부르던 아이는 자라고, 또 세월은 흐르고 아름다웠던 에이나는 노년이 되고 죽음을 맞이한다. 불안이 깃든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제이크와 카이라는 어쩌면 양이 기록해 놓은 기억을 통해 순간의 기쁨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유한하지만 그래서 더 찬란한 순간들. 양이 카메라의 눈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선 가족들을 조용히 응시하던 그 짧은 순간의 가치.
애프터 양은 SF 장르가 오래 탐구해왔던 '모든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성의 관점에서 정적이고 감성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로봇의 눈으로 본 사소하지만 소중한 삶의 풍경은 기억되고 기록됨으로써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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