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드라마, 로맨스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
출연: 카야 스코델라리오, 제임스 호손
영국 요크셔 지방의 황량한 언덕 위 '워더링 하이츠'라는 저택이 서있다. 집안의 가장인 언쇼는 폭풍이 몰아치던 밤 고아인 히스클리프를 데려온다. 아들 힌들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히스클리프를 미워하지만 딸 캐서린은 운명처럼 히스클리프와 사랑에 빠진다. 아버지 언쇼가 죽자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하인 취급하며 학대한다. 캐서린에 대한 사랑으로 버티던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이 린튼 저택의 에드거와 결혼하기로 하자 상심하여 종적을 감춘다. 몇 년 후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자신을 배신한 캐서린과 자신을 괴롭힌 자들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소설 속 히스클리프에 대한 단상
까맣고 깊은 눈동자. 침묵을 강요받은 분노는 그의 눈동자에 낙인처럼 박혀 있다. 어린 히스클리프는 반항하지 않았다. 대신 오랫동안 속으로 일군 분노는 뱀처럼 그의 몸속 깊숙이 똬리를 틀었다. 그는 고요하지만 끊임없이 그들을 질식시키고 끝내 장악한다. 그의 두뇌는 시시때때로 꿈틀대는 분노를 다스릴 만큼 차가웠고, 그 분노를 무한히 연장하고 이용할 만큼 명석했으니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그는 신이다. 악마적 기질을 가진, 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또 하나의 신. 그는 내려다보고, 비웃고, 계산하고, 이끈다. 그의 내면과 외면에 동시에 흐르는 검은 생명력은 그가 인간임을 의심하게 한다.
질문:
1. 그의 분노는 어디에서 왔을까? 태생? 부모? 아니면 언쇼가 사람들? 그것도 아니면 그 자신에 대한 열등감?
2. 그가 복수를 품은 대상의 자식들까지도 그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의 저주는 그들의 피를 겨냥한다. 피의 종말. 그렇다면 그는 태생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다는 말인가?
3. 힌들리와 캐서린이 죽은 후에도 그가 복수를 그만두지 않은 이유는?
4. 그가 결국에 언쇼가와 린튼가를 몰락시키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5. 악마, 히스클리프는 얼음장같이 차갑고 페니 스톤 절벽보다도 더 무뚝뚝한 존재다. 다만 캐서린 언쇼는 히스클리프가 사랑한 단 하나의 여자요, 그의 영혼을 쉴 수 없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러면 히스클리프가 완벽한 악마가 되는 데에는 캐서린에게 받은 상처가 결정적이었을까? 만약, 캐서린이 에드거가 아닌 히스클리프를 선택했다면 그는 과연 온전한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영화, 폭풍의 언덕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2011년작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의 관점으로 진행된다. 지금까지 리메이크된 영화들이 돌아온 히스클리프의 복수에 초점을 맞춘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워더링 하이츠에 내던져진 어린 히스클리프의 딜레마와 그 안에서 형성되는 캐서린과의 관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영화의 미장센은 압도적이다. 도정을 거치지 않은 날것의 자연은 바람 속에 버티고 선 저택의 이미지처럼 위태롭고 맹렬하다.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에 따르면 자연은 '폭풍의 언덕'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자연은 아름다운 동시에 잔혹하고 이기적이며 파괴적인 힘이 있다. 그리고 히스클리프는 이 거대한 자연의 증거다.
아놀드 감독은 핸드헬드 카메라를 이용하여 히스클리프의 불안하고 흔들리는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스산한 바람소리, 풀숲이 흔들리는 소리와 빛에 부서지는 캐서린의 얼굴 등 카메라는 히스클리프의 눈과 귀가 되어 움직인다. 뿐만 아니라 사냥당한 동물들의 클로즈업이라던가 무심히 툭 하고 삽입되는 사물 컷과 배경 쇼트는 히스클리프의 단절된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다만 히스클리프의 시점은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의 시점은 아니다. 이방인이었던 히스클리프는 늘 조금 밀려난 곳에서 이들을 본다. 소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아마 영화가 히스클리프를 설명하는 이 부분일 것이다. 3인칭 관찰자의 시점을 벗어난 영화는 소설에 비해 히스클리프의 거칠고 악마적인 본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히스클리프의 사랑과 분노, 절망을 1인칭의 시점에서 체험하게 한다. 히스클리프가 왜 캐서린을 사랑했는지, 두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닮아있고 이어져있는지를.
영화는 소설이 히스클리프의 인종을 암시하고 있는 데에서 더 나아가 흑인 히스클리프를 내세우며 인종과 계급의 갈등을 좀 더 분명히 했다. 하지만 파괴적이고 잔인한 히스클리프를 부각하기보다는 캐서린과 나누었던 맹목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에 좀 더 힘을 싣는다. 황량하고 거친 소설의 감성을 옮겨왔지만 이러한 히스클리프의 묘사로 인해 영화는 쓸쓸하고 허무적인 색채를 더 강하게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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