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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8명의 여인들(2002): 우아한 그녀들의 은밀한 욕망

by N이와이 202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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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뮤지컬, 범죄, 블랙코미디

감독: 프랑수아 오종

출연: 다니엘 다리유, 까뜨린느 드뇌브, 이자벨 위페르, 엠마누엘 베아르, 화니 아르당, 비에르지니 르도엔, 뤼디빈 사니에르, 퍼민 리처드

 

살인 사건과 8명의 용의자

1950년대 프랑스 한 교외 저택. 이른 아침 저택 주위에는 눈이 가득 쌓여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1년 만에 집을 찾은 큰딸 스종은 아빠 집에 얹혀사는 외할머니와 이모 오귀스틴, 엄마 게비, 동생 까뜨린느, 보모 샤넬, 새로 들어온 하녀 루이즈와 재회한다. 이들은 아빠의 사업 난이나 얼마 전 파리에서 왔다는 고모 피에르트의 뒷담이나 나누며 이 저택의 유일한 남자이자 가장인 마르셀이 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린다.

차를 준비해 2층 마르셀의 방에 들어서던 하녀 루이즈는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와 함께 방에서 뛰쳐나온다. 달려간 식구들은 등에 칼이 꽂힌 채 죽어있는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한다. 밤새 내린 눈으로 저택은 외부와 고립된 상황, 어젯밤 포악한 그 집 개들이 짓지 않았기 때문에 살인자는 집에 있던 8명의 여인들 중 한 사람인 것이 틀림없다.

 

스종은 순종적인 것 같지만 어쩐지 도도해 보이는 루이즈로부터 풍기 문란한 피에르트와 성실한 보모 샤넬이 남몰래 만나왔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하지만 샤넬은 오히려 남자를 유혹하려 한다며 루이즈를 비난한다. 외할머니는 파산하려는 이 집 가장에게 자신의 주식을 나누어주지 않은 것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주식을 살인자에게 도둑맞았다고 주장한다. 부자 남편을 가진 아름다운 게비를 질투해 온 못생기고 가난한 이모 오귀스틴은 게비가 주식을 훔쳤다며 난동을 피운다.

아침에 오빠가 살해당할 거라는 이상한 전화를 받은 피에르트는 저택을 찾아오고, 자신을 의심하는 가족들에게 오귀스틴이 형부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실체를 드러내는 비밀들

스종은 임신한 사실을 고백한다. 게비는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채로 마르셀과 결혼했고, 스종은 자신이 아빠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과 게비가 오늘 아빠를 떠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루이즈는 5년째 이 집의 가장과 밀애를 즐겨왔지만, 이 집의 하녀로 들어온 진짜 이유는 마르셀이 아닌 게비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자신의 남편을 독살했다. 게비가 남편을 떠나려던 이유와 피에르트가 오빠에게 거금을 뜯어낸 이유가 모두 한 남자(가장의 동업자인 파농)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밤사이 마르셀의 방에 들렀던 8명의 여인들:

외할머니는 주식을 잃어버렸다고 거짓말한다. 오귀스틴은 형부에게 언니 게비의 흉을 본다. 게비는 내일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한다. 루이즈는 마음이 복잡한 마르셀에게 치근댄다. 고모 피에르트는 오빠에게 거금을 뜯어낸다. 샤넬은 질투에 눈이 멀어 피에르트를 재촉한다. 스종은 임신한 사실을 상의하러 방문한다. 이를 모두 지켜보고 있던 막내 까뜨린느는 울고 있던 아빠를 위해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 이 모든 상황극을 꾸며낸다.

 

가족의 위선을 밝혀내기 위한 이 상황극이 성공리에 끝났다고 생각한 까뜨린느는 아빠방으로 의기양양하게 들어가지만 더러운 비밀들을 모두 알게 된 가장은 그 자리에서 자살하고 많다. 충격에 휩싸이는 8명의 여인들.

 

 

 

영화의 특징과 감상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중에 느닷없이 춤을 추며 노래한다. 일면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이들의 행동에는 감추고 싶어 하는 진실이 내포되어 있다. 서로를 공격하다가도 노래가 끝나면 화해의 키스를 나누는 둥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환기되는 것도 노랫말에 함유된 진실의 힘인 듯도 하다.

뮤지컬을 활용하는 측면에서 보면 노래가 끝나는 순간 다른 컷, 다른 씬으로 넘어가지 않고 노래를 마치고 가족들과 합류하는 장면까지를 보여주는 방식이 독특했다. 초반 이러한 방식이 어색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노래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한 형식으로서 삽입된 게 아니라 오히려 등장인물들이 극 안에서 실제로 노래하고 있다는 걸 강조하는 편집이었기 때문이다. 가족이 죽은 날 춤을 추며 노래하는 건 너무 이상하다. 그러나 영화의 이러한 이상하고 생뚱맞은 설정에서 억눌려있던 여자들의 가부장적 통념에 대한 무시를 느낄 수 있다.

 

의상 콘셉트는 과거의 할리우드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의상의 스타일과 색은 캐릭터를 설명하고 신분이나 관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흉하고 내밀한 성격의 외할머니는 보라, 우아하고 돈이 많은 게비는 금색의 호피무늬, 신경질적이고 은밀한 사랑을 하는 오귀스틴은 갈색, 순종적인 하녀와 저돌적인 매력녀의 양면성을 지닌 루이즈는 흑과 백, 정열적이고 자유로운 피에르트는 빨간색, 순정파 샤넬은 해바라기의 상징인 노란색,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스종은 분홍색,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모든 상황을 자초한 까뜨린느의 대표색이 평화와 안전을 상징하는 초록색인 것도 재밌다.

 

8명의 여인들은 가장이라는 무게에 억눌려 있던 여자들의 개성과 욕망이 폭발하는 영화다. (20년 전 개봉했을 때보다 지금 더 의미 있게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 제한된 공간에서의 연극적 연출을 통해 오종 감독이 여태 다뤄왔던 은밀한 소재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한다. 뿐만 아니라 화려한 배우들의 면면을 조화롭게 안착시키기보다는 각 배우들의 개성을 극대화하고 개별화시켜 여성의 다양한 면들을 과장되게 보여주기를 선택한다. 사건의 전말이나 범인 찾기는 이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대신 결백을 주장하는 '8명의 여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의상, 춤, 노래, 그 밖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동성애, 불륜, 살인, 자살과 같은 자극적인 이야기가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독특한 장르 섞기와 배우들의 매력적인 연기로 거부감 없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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